[국제관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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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소련의 탄생과 의미 (1922년)
- 소련 국기의 상징: 소련은 노동자 계급과 농민 계급의 동맹이라는 이념을 내세워 결성되었다.
- 망치: 노동자 상징
- 낫: 농민 상징
- 붉은 별: 사회주의/공산주의 상징 (러시아어 '붉다'와 '아름답다'는 같은 어원에서 유래)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소련 탄생 100주년인 2022년에 두 나라는 전쟁 중이다. 이들은 한때 가족 같은 존재였으나, 지난 100년간의 사건들로 인해 현재 대립하고 있다.
2. 푸틴의 역사관과 전쟁 명분
2.1. 푸틴의 연설
전쟁 발발 사흘 전 55분간의 TV 연설에서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본래 별개의 나라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2.2. 러시아 혁명
러시아는 1613~1917년까지 약 300년간 왕조를 이어온 제국이었다. 러시아 내부의 사회 부조리,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오다가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하자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길어지는 전쟁 속에서 러시아는 계속 패배를 하면서 러시아 제국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1917년 2월 전쟁으로 빵의 배급이 중단되고 분노한 여성 노동자와 주부들이 시위를 일으키게 된다. 이후 남성 노동자와 시민이 동참하게 되고 심지어 군인도 합세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제정 러시아는 붕괴한다. 이 혼돈 속에서 정권을 잡은 정당이 볼셰비키당(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급진 정당)이다.
2.3. 레닌과 볼셰비키 비판
푸틴은 1917년 혁명 이후 레닌과 볼셰비키당이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하여 오늘날의 갈등과 전쟁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레닌의 민족 자결주의(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다는 주장) 정책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 내 여러 민족 국가(폴란드, 핀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가 독립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결성된 것을 비판의 핵심으로 본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전까지 정치적, 문화적 독립성을 누리지 못했으나 소련 체제 하에서 별도의 공화국으로 자율성을 보장 받았다.
3.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 지정학적 위치: 북쪽으로는 발트해, 서쪽으로는 동유럽, 동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동과 접해 있어 동서남북으로 영향력 확장이 용이하다. 부동항의 이점도 있다.
- 경제적 가치: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릴 만큼 농업 생산량이 풍부하며(초르노젬: 검은 땅), 석탄 및 광물 자원이 많아 자원이 많은 지역이다. 이러한 경제적 이점은 러시아의 오랜 욕심의 대상이 되었다.
4.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의 악화 요인
홀로도모르 (1930년대 초): 스탈린 정권의 농장 집단화 정책(대다수 농민을 집단, 국영 농장에 강제 편입) 실패와 강제 곡물 수출(공업화 자금 마련 위해)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여 수백만 명(일부 학자는 900만 명)이 사망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5. 소련 해체와 그 영향 (1991년)
해체 원인: 소련 해체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내부 효율성 저하: 경제적 침체와 비효율성.
- 민족 문제: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접착제가 약화되면서 15개의 공화국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 내에 민족 간 갈등 증폭.
- 냉전의 경제적 패배: 미국의 기축통화(달러)와 달리 루블화의 한계로 인한 경제력 열세.
- 고르바초프의 개혁 실패: 소련은 1980년대 유가폭락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받는다 .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고르바초프는 소련 체제 유지를 위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했으나, 파산 상태의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했고 국제 정세 악화(동유럽 민주화 바람)와 강력한 리더십 부재가 겹쳤다.
6. 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 혼란
초기 시행착오: 독립 후 주체적인 경제 운영 경험 부재로 우왕좌왕했으며, 소련 체제에 남아있던 권력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잠재력이 현실화 되지 못했다.7.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2004년 11월)
- 배경: 친러시아 성향 대통령의 선거 부정 의혹이 제기됨.
- 전개: 시민들이 오렌지색을 상징으로 내세워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된 시민혁명으로 평가. 결국 최고 재판소에서 부정 인정.
- 결과: 재투표를 통해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나, 독극물 중독 의혹(유센코 혈액에서 기준치의 6천배가 넘는 다이옥신 검출, 배후에 러시아 KGB 연루설)이 제기되며 친서방 정책(EU, NATO 가입)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친서방계와 친러시아계의 극심한 대립이 시작되었다.
- 지역 갈등: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친서방 성향이 강한 반면, 동부 지역은 러시아와의 친밀한 관계를 주장하며 극단적인 의견 대립을 보였다. 이러한 대립은 드니프로강을 기준으로 서부는 폴란드/오스트리아, 동부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역사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
8. 유로마이단 봉기 (2013-2014년)
- 배경: 2010년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우크라이나 경제 부활을 고심하던 야누코비치는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하였으나 유럽 연합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때 푸틴 대통령이 막대한 원조를 약속하였고,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를 선택하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분노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 전개: '유로'(유럽)와 '마이단'(광장)의 합성어로, 시위대는 유럽 연합과의 경제 통합 추진과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태는 더욱 격화되었다.
- 결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모스크바로 도피했으며, 그 뒤를 이어 친서방 정부가 들어섰다.
9. 푸틴의 '네오나치' 주장과 그 실체 논란
9.1. 스테판 반데라(1909~1959)
유로마이단 시위를 이끈 세력 중 하나로 자유당이 언급되는데, 이 당의 기원이 스테판 반데라라는 인물과 연결된다. 반데라는 우크라이나의 완전 독립을 추구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극우)을 결성했다.
9.2. 나치 협력
1941년 독소 전쟁(1941~1945,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이 벌인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전쟁이자 총력전) 시기에 반데라와 그의 추종 세력은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나치 독일과 협력하여, 우크라이나 내 소수 민족과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9.3. 푸틴의 주장
푸틴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반데라를 추종하는 네오나치(나치의 후계자를 자칭하며 히틀러를 숭배) 세력이 남아있으며, 이들이 유로 마이단 사태를 폭력 사태로 이끌었다고 주장하며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 선거에서 네오나치 세력(자유당)은 미미한 지지만 받았으며, 푸틴의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반된 시각이 공식 언론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확한 비판을 위해서는 네오나치 세력의 실체와 비중을 파악해야 한다.
10. 전쟁의 정당성 문제
- 푸틴의 오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해결하는 수단이 전쟁이었다는 점은 푸틴의 크나큰 오산이자 잘못된 판단이다. 전쟁을 일으킨 순간 러시아는 패배자가 된다.
- 반복되는 역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전쟁과 갈등의 반복으로 점철되어 왔다.
11. 핀란드의 NATO 가입 결정과 그 함의
- 핀란드의 중립 정책: 핀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과거 소련과의 전쟁 경험(겨울 전쟁: 1939년 11월 30일~1940년 3월 13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영토를 맞바꾸자는 요구를 핀란드가 거부하자 소련이 침공하여 발발)이 있다. 1948년 NATO 가입을 거부하고 중립을 표방하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는 중립화 정책을 유지해왔다.
- 변화의 계기: 러시아가 형제국이라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 NATO 가입 선언: 이로 인해 핀란드 국민 여론이 급변하여 NATO 가입을 강력히 지지하게 되었다.
- 러시아의 역효과: 푸틴은 NATO의 동진 확장을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핀란드와 스웨덴의 NATO 가입을 촉발하여 역상황을 초래했다. 이는 푸틴의 결정이 결과적으로 러시아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2. 전쟁의 확산 우려와 해결 방안
- 전선 확장 가능성: 미국 같은 초강대국에게도 두 군데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벅찬 일이므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푸틴이 우크라이나 외 다른 곳에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된다. 그러나 전쟁은 합리적 판단 외에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요소가 작용할 수 있으므로 전선 확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평화의 중요성: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전쟁을 중지하는 것이다.
- 중재의 필요성: 푸틴과 젤렌스키 두 정상의 자존심 때문에 협상이 어렵다면, 국제사회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국가의 대통령이 나서서 강력하게 중재를 요구하고 판을 만들어 주면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참조영상]
강사 : 류한수
- 현직
-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학력
- 영국 에식스대 역사학과 박사
- 저서
- 〈러시아의 민족정책과 역사학〉
- 〈서양사 강좌〉
- 〈2차 세계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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